로딩 중...
전체 25장 중 25장
皇极经世
천지만물이 나타내는 여러 괘는 직접 건(乾)·곤(坤) 과 교차하지 않으면 비(否)·태(泰) 두 괘에서 발생한다. 비·태 두 괘는 바로 건곤 음양이 교합하는 문호이다. 근본을 추적하면 건곤은 기우(奇偶)의 수에서 일어나고, 기우는 태극에서 생겨난다.
천지가 내게 부여한 바탕을 **명(命)**이라 하고, 명이 자신에게 내재한 것을 **성(性)**이라 하며, 성이 만물 가운데 드러난 것을 **리(理)**라 한다.
"삭이(朔易)"는 양기가 북방에서 생겨나 북방에 이르러 다하는 것을 이르니, 이는 변역 순환의 이치를 말한다. 🌱
봄에는 양기가 주관하므로 가뭄이 많고, 가을에는 음기가 주관하므로 비가 많다. 🌧
"원(元)"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천지를 낳는 시작, 즉 태극이다. 둘째, 만물 가운데 각각 그 시작이 있으니, 이는 생명의 근본이다.
천지의 마음은 만물을 낳고 기르는 근본이다. 천지의 정은 만물의 정상(情狀)으로, 귀신의 정상과 서로 통한다.
장자와 혜자가 호량(濠梁) 위에서 노닐 때 장자가 말했다. "조어(鯈魚)가 나와서 한가히 노니는구나.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다." 이는 자기 자신의 성을 다하여 만물의 성을 다한 것이다. 물고기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천하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장자와 같은 사람은 가히 물성을 잘 통하게 한 사람이라 이를 만하다.
노자는 역의 본체를 안다. "무사무위(無思無為)"는 신묘하여 하나에 이르는 경지이다. 성인이 이로써 그 마음을 씻고 물러나 은미한 곳에 감춘다.
태극은 도의 지극함이요, 태현은 도의 본원이요, 태소는 색의 근본이요, 태일은 수의 시작이요, 태초는 일의 단서이다. 그 성공은 하나로 돌아간다.
태갱(太羹)은 조화시킬 수 있고, 현주(玄酒)는 묽게 할 수 있으니, 조화도 또한 조화시키고 묽게 할 수 있다.
서로 처한 자리를 바꾸면 '나'라는 집착이 없다.
성(誠) 은 주재하는 그릇이되, 단서도 없고 방소도 없다. 지극하도다, 유후 장량이여, 그 쓰임을 잘 감추었구나.
《소문》《음부》와 같은 경전은 방술의 이치에 있어 지극함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였을 때, 순임금은 천하를 버리기를 마치 헌짚신을 버리듯 여기고 아버지를 업고 바닷가에 은거하여 살면서 평생 즐거워하며 천하를 잊었다. 성인은 천하의 큼을 가졌다 하더라도 타고난 혈육의 사랑을 바꿀 수 없다. ❤️
어떤 이가 "현제인(顯諸仁), 장제용(藏諸用)"의 뜻을 물었다. 답하길: 해와 달이 땅을 비추고 사시가 운행하여 해를 이루는 것이 **현인(顯仁)**이다. 그 도수와 법칙이 그러함을 알 수 있으나 사람이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장용(藏用)**이다.
군자는 《역》에서 상(象)을 완미하고, 수(數)를 완미하고, 사(辭)를 완미하고, 뜻을 완미한다.
태괘(兌卦) 는 기쁨을 주관한다. 다른 여러 괘는 모두 견해 폐해가 있으나, 오직 벗과 강습하는 도는 기뻐하되 해로움이 없으니, 이른바 지극한 이치를 말한 것이다.
중용의 도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만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인정을 헤아려 행하여 편안한 바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도를 얻음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 사덕이 각각 길흉회린(吉凶悔吝)의 일을 감추고 있다. 비록 덕으로 행한다 하더라도 시세를 어기면 흉함을 얻을 수도 있다.
상탕이 하나라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토벌했으나 시군(弑君)으로 여기지 않았다. 맹자가 말한 것과 같다. 남녀가 서로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禮)요,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내밀어 구하는 것은 권변(權變)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이적의 인을 높이고 또한 탕무의 의를 칭송한 것이다. 이적에게는 인이 있고, 탕무에게는 의가 있다. 그러나 오직 탕무만이 이렇게 할 수 있었으니, 만약 탕무가 아니라면 이는 찬역이다.
음은 양의 그림자요, 귀신은 사람의 그림자이다. 👻
진목공(秦穆公) 은 주실에 공로가 있고 잘못을 고쳐 선하게 될 수 있었으니, 오패 가운데 가장 훌륭하였다. 진문후(晋文侯) 는 대대로 왕을 받들어 평왕을 낙읍으로 옮겼으니 그 다음이다. 제환공(齊桓公) 은 병거를 쓰지 않고 제후를 아홉 번 규합하였으니 또 그 다음이다. 초장왕(楚莊王) 은 나라가 강성함으로 말미암았으니 또 그 다음이다. 송양공(宋襄公) 은 패자라 일컬었으나 실력이 미약하여 제후들을 회맹하다가 초나라에 잡혔으니 논할 가치가 없다. 《춘추》를 연구하는 사람이 먼저 네 나라의 공과 허물을 정하지 않으면 일에 통섭할 조리가 없어 성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춘추 시기에 공이 있는 자로 네 나라보다 큰 자를 보지 못했고, 허물이 있는 자로 네 나라보다 큰 자를 보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네 나라는 공의 으뜸이요 죄의 시작이다. 어떤 이가 《춘추》는 성명(性命)의 책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교제(郊祭)에 쓸 소의 입이 상하자 점쳐서 다른 소로 바꾸었고, 그 소가 죽자 교제를 거행하지 않고 오히려 삼망(三望)의 제사를 지냈다. 이는 노나라의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폄하한 것이다. 성인이 어찌 여기에 마음을 두었겠는가? 무아(無我) 때문이다. 어찌 성명으로 말미암아 발언한 것이 아니랴? 《춘추》는 모두 일에 인하여 포폄하니, 어찌 사람이 특별히 사사로운 뜻을 세울 수 있겠는가? 《춘추》는 성인의 필삭(筆削)으로 천하의 지극한 공정함이다. 성인이 지극히 공정한 까닭을 알지 못한다. 소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노나라에 교제를 월등히 썼던 것을 알고, 처음으로 육우(六羽)를 올린 것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팔일(八佾)을 몰래 썼던 것을 알고, 새로 치문(雉門)을 지은 것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치문이 없었던 것을 아는 것이니, 모두 성인이 그 사이에 뜻을 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춘추》는 **진성지서(盡性之書)**라 한다.
《역》이 전적이 된 것은 성명의 이치에 순응하고 자연을 따르기 위함이다. 공자가 절사(絶四, 뜻을 두지 않고[毋意], 반드시 하지 않으며[毋必], 고집하지 않고[毋固], 사사로이 하지 않음[毋我])하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하여도 도를 넘지 않았고, 하나로 꿰뚫었으니 지명(至命)한 사람이다. 안자는 심재(心齋)로 번번이 빈 것을 겪었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공은 많이 쌓아서 배움을 삼고 헤아려서 도를 구했으니 마음을 깎아내고 견해를 없애고 이치에 몸을 맡기지 못하였으니 아직 명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춘추》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사사로운 뜻을 세우지 않으니 그러므로 진성의 책이다.
초효와 상효는 같이 한 괘의 지극함에 속하지만 상효는 항성(亢極)하여 초효의 진취함에 미치지 못한다. 이효와 오효는 같이 중위에 있지만 이효의 음중(陰中)은 오효의 양중(陽中)에 미치지 못한다. 삼효와 사효는 같이 중(中)에 처하지 않지만 삼효는 아래 괘의 위에 처하여 사효가 임금에게 가까운 것만 못하다.
사람의 귀함은 만물을 겸섭하여 스스로를 중히 여겨 그 귀함을 얻으니 그러므로 능히 만물을 부릴 수 있다.
지리지학(至理之學) 은 지성(至誠)이 아니면 능히 도달할 수 없다.
《소문》《음부》는 칠국 시기의 책이다.
현제인(顯諸仁), 장제용(藏諸用)이라 했으니, 공자가 어찌 그 쓰임을 잘 감춘 이가 아니랴?
장자·순자의 무리들은 변론에 지나쳐 허물이 있었다.
백이(伯夷)는 의리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다가 굶어 죽기에 이르렀으니 오직 인을 지킨 것일 뿐이다. 🌾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 하여, 한 고을의 어진 이를 벗하고 천하의 어진 이를 벗하며, 천하로도 부족하여 더 나아가 옛 사람을 숭상하여 논하니 더할 것이 없다.
의(義)가 중하면 안이 중하고, 이(利)가 중하면 밖이 중하다.
사람이 치료할 수 있는 병을 고칠 수 있어도 명의라고 하지 못하고, 사람이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고칠 수 있어야 천하의 명의이다.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자만함을 두려워하니, 차면 그친다. 그러므로 우임금이 자만하지 않았으니 이로써 어진 이가 된 것이다. 배움을 위해서도 항상 부족한 듯해야 하지, 높은 데서 낮은 이를 굽어보며 스스로 높다 여기면 안 된다.
사람이 마음을 쓰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되 다만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고 지혜와 인식에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다.
이치를 궁구한 연후에 성을 알고, 성을 다한 연후에 명을 알고, 명을 안 연후에 지극함을 안다.
무릇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먼저 처하면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먼저 처하면 잃음은 감당하기 어려워 반드시 지조를 잃는 데에 이른다.
사람은 반드시 안이 중해야 한다. 안이 중하면 밖이 가볍다. 만약 안이 가벼우면 반드시 밖이 중하여 이익과 명예를 좋아하는 데 이르지 않음이 없다.
천하에 글 읽는 이를 말하는 자는 많으나 능히 글을 읽는 이는 적다. 만약 천리의 참된 즐거움을 얻는다면 어떤 책인들 읽지 못하랴? 어떤 어려운 것인들 깨뜨리지 못하랴? 어떤 이치인들 정밀하게 하지 못하랴?
천시(天時), 지리(地理), 인사(人事) 세 가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자성(資性)은 하늘에서 얻고, 학문은 사람에게서 얻는다. 자성은 안에서 나오고 학문은 밖에서 들어온다.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은 성(性)이요, 밝음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지는 것은 학(學)이다.
백이와 유하혜는 각각 성인의 한 측면을 얻었다. 백이는 성인의 청(淸)을 얻었고, 유하혜는 성인의 화(和)를 얻었다. 공자는 때로 청하기도 하고 때로 화하기도 하며, 때로 행하고 때로 그쳤으니 성인의 시(時)를 얻었다.
태현은 아홉 해[日?]가 두 괘에 해당하고, 나머지 한 괘는 사일 반(四日半)에 해당한다.
용병의 도는 반드시 백성이 풍족하고 곡식 창고가 가득하며 국고가 충실하고 병사가 강하며 명분이 바르고 천시가 순응하며 지리를 얻은 연후에 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노자 오천언(五千言)은 대개 모두 물리(物理)를 밝힌 것이다. 📖
지금 어떤 이가 두 대에 오른다 하자. 두 대의 높이가 같으면 그 높음을 보지 못하고, 한 대가 높은 연후에 다른 대의 낮음을 안다. 한 나라, 한 집, 한 몸도 다 이와 같다. 한 몸을 잘 다스리면 한 집을 잘 다스릴 수 있고, 한 집을 잘 다스리면 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고, 한 나라를 잘 다스리면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다. 마음은 몸의 근본이요, 집은 나라의 근본이요, 나라는 천하의 근본이다. 마음이 몸을 운행할 수 있으니, 만약 마음이 하고자 하지 않는 바라면 몸이 능히 행하겠는가?
사람의 정신은 감추어 두고 잘 쓰는 데에 귀함이 있다. 밖에 드러내면 허물이 없는 자가 드물다. 예컨대 날카로운 칼이 물건이 오면 끊는 것이지, 칼날의 날카로움을 믿고 물건을 베려 한다면 칼과 물건이 함께 상한다.
언어가 진실함에서 발하면 마음은 수고롭지 않고 편안하며, 오래되면 사람이 반드시 믿는다. 거짓을 꾸미고 술수를 부리면 한때는 혹 남을 속일 수 있으나 오래가면 반드시 패한다.
사람은 덕이 있음에 귀함이 있다. 소인 중에 재주 있는 자는 드물지 않다. 그러므로 재주는 믿을 수 없고 덕은 없어서는 안 된다.
천지는 해와 달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마음에 원대함을 두어야지, 눈앞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군자가 전야에 처하면 전야의 일을 행하고, 묘당에 있으면 묘당의 일을 행하니,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を得지 않음이 없다.
지모와 권술은 혹 한때에 베풀 수 있으나 마침내는 궁해지는 때가 있으니, 오직 지성(至誠) 만이 천지와 더불어 오래간다.
천지가 만약 없다면 지성이 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지가 없을 수 없으니 지성 또한 그치지 않는다.
방 안에서 수레를 만들어도 천하에 다닐 수 있는 것은 궤적이 맞기 때문이다. 의리에 순응하고 인정에 맞으면 해와 달이 비추는 곳마다 다닐 수 있다.
천하의 선함을 모으면 넓고, 자기 혼자만 쓰면 좁다.
한유(漢儒)가 경(經)에 어긋나되 도에 합하는 것을 권(權)이라 하여 한 측면만 얻었다. 권(權) 은 사물의 가볍고 무거움을 저울질하는 데 쓰인다. 성인이 권을 행할 때 그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려 행하여 그 마땅함에 부합할 뿐이다. 그러므로 중심을 잡되 권이 없으면 오히려 치우침이 된다. 왕통(王通)이 《춘추》는 왕도의 권(權)이라 했으니, 왕통이 아니면 능히 여기에 미칠 수 없다. 그러므로 권이 한 몸에 있으면 한 몸의 권이 있고, 한 고을에 있으면 한 고을의 권이 있으며, 천하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권이 있다. 쓰임은 같지 않아도 그 권은 하나이다.
활은 본래 강함과 약함이 있다. 한 활을 두 사람이 당기는데, 힘 있는 자는 활이 약하다 여기고 힘 없는 자는 활이 강하다 여긴다. 힘 있는 자는 자기 힘이 남음이 있다 하여 활이 약하다 여기지 말 것이요, 힘 없는 자는 자기 힘이 부족하다 하여 활이 강하다 여기지 말 것이니, 어찌 생각함이 이토록 깊지 않은가? 한 활이 강하고 약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힘이 강하고 약함이 다른 것이다. 지금 한 그릇의 음식이 앞에 있는데 두 사람이 크게 굶주려 그것을 본다면, 만약 서로 사양하면 모두 음식을 얻을 것이요, 서로 빼앗으면 다툼이 나니, 다툼만이 아니라 혹 그 음식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사람의 정이니 이것을 아는 자가 적다. 이것을 알면 천하의 일이 다 이와 같음을 안다.
선천학(先天學) 은 성실함을 주관하니, 지성이면 신명에게 통할 수 있고, 성실하지 않으면 도를 얻을 수 없다.
좋은 약은 손에서 놓을 수 없고, 좋은 말은 입에서 놓을 수 없다.
일은 반드시 힘을 헤아리며, 힘을 헤아리기 때문에 능히 오래갈 수 있다.
학문은 인사(人事)를 큰 것으로 삼는다. 지금의 경전은 곧 옛날의 인사이다.
《춘추》 삼전(三傳) 이외에 육순(陸淳)·담조(啖助)는 겸하여 다스릴 만하다.
계찰(季札)의 재주는 백이에 가깝다. 숙향(叔向)·자산(子産)·안자(晏子)의 재주는 서로 같다. 관중(管仲)은 지수(智數)를 썼고, 늦게 물리를 알았으니 대체로 재력이 남을 압도하였다.
오패(五霸)는 공의 으뜸이요 죄의 시작이다. 《춘추》는 공자의 형벌의 책이다. 공과 허물은 서로 가리지 않으니, 성인이 먼저 그 공을 포상하고 나중에 그 죄를 폄하한다. 그러므로 죄인이라도 공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하니, 관대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양관(兩觀)을 지은 것은 "새로[新]"가 폄함이니 그 옛날에 없었음을 문책한 것이다. 처음으로 육우(六羽)를 올린 것은 "처음[初]"이 포상함이니 그 옛날에 팔일을 월등히 썼기 때문이다. 🏛
어떤 이가 윤사로(尹師魯)에게서 《춘추》를 받았는데, 사로는 목백장(穆伯長)에게서 받았다. 어떤 이가 후에 다시 백장을 공격하여 말하길: "《춘추》에는 포상이 없고 모두 폄하이다." 전술고(田述古)가 말하길: "손복(孫復)도 또한 《춘추》는 폄만 있고 포는 없다고 하였다." 답하길: 《춘추》 시대는 예법이 허물어지고 군신이 어지러웠으니, 그 사이에 작은 선이라도 능히 행한 자가 있으면 어찌 나아가게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오패는 실로 천하에 공이 있었다. 또 오패는 진실로 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월등히 참람하게 취하는 자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찌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는가! 《춘추》를 다스리는 자가 명실(名實)을 분별하지 않고 오패의 공과 허물을 정하지 않으면 《춘추》를 다스린다고 말할 수 없다. 먼저 오패의 공과 허물을 정하고 《춘추》를 다스리면 대의가 서게 된다. 만약事事마다 구하면 조리가 없다.
무릇 사람이 학문을 하되 스스로 지나치게 주장함에 허물이 있다.
평왕은 이름이 비록 왕이나 실제로는 한 나라의 제후에 미치지 못하고, 진(晋)은 비록 후작이나 실제로는 왕의 제도를 월등히 썼으니, 모두 《춘추》의 명실에 관한 문제이다. 자공이 고삭(告朔)의 희양(餼羊)을 없애고자 하였으니, 양(羊)은 이름이요 예(禮)는 실상이다. 이름은 존재하고 실상은 사라졌으나, 이름과 실상이 함께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다. 이미 그 이름을 보존해 두었으니 어찌 후세에 왕자가 일어나지 않을 줄 아랴? 그러므로 기다리는 바가 있는 것이다.
《춘추》는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한 때를 위하여 지어졌으니, 그러므로 **명분지서(名分之書)**라 한다.
성인의 어려움은 인의충신을 잃지 않고 사업을 이루는 데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사(絶四) 에 있다.
말이 있는 자가 남에게 빌려 타게 하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이다.
어떤 이가 "재난(才難)"의 뜻을 물었다. 답하길: 큰일에 임한 연후에 재주의 어려움을 본다. 물어 말하길: 어째서 홀로 재주를 말하는가? 답하길: 재주는 하늘이 주신 아름다운 바탕이요, 배우는 자는 이로써 그 재주를 이루는 것이다. 물어 말하길: 옛 사람 중에 학문을 거치지 않고 공업을 세운 이도 있는데 어찌 반드시 배움을 말하는가? 답하길: 주발(周勃)과 곽광(霍光)이 능히 큰일을 이루었으나 오직 배움이 없었기 때문에 지극히 선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배움이 없으면 이치를 밝힐 수 없고, 이치를 밝힐 수 없으면 고집하여 통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뛰어난 재주가 있으면 반드시 강한 절개가 있다. 가운데가 강하면 족히 사업을 세우고 환난을 처리할 수 있으나, 만약 다른 길에 쓰이면 도리어 간악함이 된다. 그러므로 공자가 신정(申棖)을 평하여 "어찌 강하다 이르랴" 하였으니, 이미 욕심이 있으면 반드시 강함이 없는 것이다.
군자가 의리에 밝으면 현인(賢人)이요, 소인은 이익에 밝을 뿐이다. 의와 이익을 모두 잊은 자는 오직 성인만이 능히 한다. 군자는 의리를 두려워하여 하지 않는 바가 있고, 소인은 곧장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 성인은 움직여도 규구를 넘지 않으니 무슨 의리를 두려워하랴?
학문하고 마음을 기르는 데에 근심은 곧은 도[直道]에서 말미암지 않는 데 있다. 이욕(利欲)을 버리고, 직도로 말미암아, 지성에 맡기면,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 천지의 도는 곧을 뿐이니 마땅히 곧음으로 구해야 한다. 만약 지수를 쓰거나 굽은 길로 구한다면 이는 천지를 굽혀서 사람 욕심을 따르는 것이니 어렵지 아니한가?
일은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천인(天人)의 이치가 있다. 몸을 닦는 것은 사람이요,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하늘이다. 얻고 잃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러므로 하늘에 순응하는 것이요, 험한 길을 가며 요행을 바라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구하는 것은 사람이요, 얻고 못 얻음은 하늘이다. 얻고 잃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은 하늘에 순응함이요, 억지로 취하여 반드시 얻고자 하는 것은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니,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근심과 재앙이 반드시 이른다. [역주: 이른바 일을 꾀함은 사람에 있고, 이루어짐은 하늘에 있다.]
노(魯)나라의 양관(兩觀)·교천대체(郊天大禘)는 모두 예가 아니다. 제후에게 사시(四時)의 체(禘)가 있어 상제(常祭)로 삼는 것은 가하나, 오년에 한 번 하는 대체(大禘)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중궁(仲弓)은 남면(南面)하게 할 수 있고 정치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누구인들 문을 나가되 문을 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문이 곧 도이다. 도를 말미암지 않고 일을 이룬 자는 없다. 문을 통하지 않는 것은 자물쇠 구멍으로 뛰어드는 따위이다.
많이 듣되 그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라. 비록 많이 들었어도 반드시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는 것이다. 많이 보았으면 기억하라. "식(識)"은 분별함이니, 비록 많이 보았어도 반드시 분별함이 있어야 한다.
낙하굉(落下閎)이 전제(顓帝)의 역법을 고쳐 태초력(太初曆)을 만들었고, 양자운(揚子雲)이 태초력을 본받아 《태현》을 지었으니, 무릇 81괘인데 9분이 함께 두 괘를 이루고, 무릇 한 오(五)와 한 사(四)가 나뉘어, 세밀하게 나누면 4분 반[四分半]이 한 괘에 해당하고, 기(氣)는 중심에서 일어나니 그러므로 수(首)는 중괘(中卦)이다. 📐
원형이정은 변하고 바뀌어 일정하지 않으니, 이는 천도의 변함이다. 길흉회린은 변하고 바뀌어 일정하지 않으니, 이는 인도의 응함이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라 한다. 도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 얻어 볼 수 없으므로 길[道路]의 '도'를 빌려서 이름한 것이다. 사람이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도로 말미암는다. 일음일양은 천지의 도로, 만물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현제인(顯諸仁)"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공로로 사람이 얻어 볼 수 있는 것이요, 만물을 지어내는[造] 바는 사람이 얻어 볼 수 없는 것이니, 이는 "장제용(藏諸用)"이다.
십간(十干)은 하늘이요, 십이지(十二支)는 땅이니, 간지가 천지의 쓰임을 배합한다. ☯️
《역》은 삼황에서 시작하고, 《서》는 이제(二帝)에서 시작하고, 《시》는 삼왕(三王)에서 시작하고, 《춘추》는 오패(五霸)에서 시작한다.
건곤(乾坤)에서 감리(坎離)까지는 천도를 말하고, 함손(咸損)에서 기제미제(旣濟未濟)까지는 인사를 말한다.
사람의 꾀는 사람이요, 귀신의 꾀는 하늘이니, 천인이 함께 꾀하여 모두 가하면 일이 이루어지고 길하다.
변함[變]을 때를 따라 천하의 일을 편하게 하되 예의 큰 줄기를 잃지 않으며, 변함을 때를 따라 천하의 이치에 순응하되 의의 큰 권도를 잃지 않음, 이것이 군자의 도이다.
오성(五星)의 설은 감공(甘公)·석공(石公)에게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지혜가 강하면 사물의 지혜는 약하다.
장자가 《척도(盜蹠)》 편을 지은 것은 지극한 악을 밝혀서, 비록 성현이라도 또한 능히 교화하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니,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는 옮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노나라의 유자(儒者) 한 사람은 공자를 이른다.
천하의 일이 처음에 지나치게 무거우면 마침내 가벼움으로 돌아가고, 처음에 지나치게 후하면 마침내 박함으로 돌아간다. 하물며 처음부터 가볍고 처음부터 박한 자이랴! 그러므로 적게는 무거움에 허물이 있고 많이야 가벼움에 허물이 있으며, 적게는 후함에 허물이 있고 많이야 박함에 허물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무거움에 지나칠까 근심하지 않고 항상 가벼움에 지나칠까 근심하며, 후함에 지나칠까 근심하지 않고 항상 박함에 지나칠까 근심한다.
장자의 《제물론》은 면할 수 없는 비교가 있다. 비교하면 다투고, 다투면 평평하지 않으며, 평평하지 않으면 화목하지 않다. 무사무위(無思無為)는 신묘하여 하나에 이르는 경지이니, 성인이 이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나 은미한 곳에 감춘다.
스승에게도 인(仁)을 양보하지 않는 것은 인을 나아가게 하는 도이다.
진목공이 정나라를 칠 때 패하여, 뉘우치고 스스로 맹세하는 말이 있었으니, 이는 패자의 일에 그치지 않고 거의 왕도에 가깝다. 능히 뉘우치면 허물이 없으니, 이는 성인이 《서경》 끝에 기록한 까닭이다.
유순(劉絢)이 "무위(無爲)"를 물었다. 답하길: 때가 된 연후에 말하니 사람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으며, 즐거운 연후에 웃으니 사람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의로운 연후에 취하니 사람이 그 취함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위이다.
文中子说:易乐者必多哀,轻施者必好夺。或问:天下皆争利弃义,我独自怎么办?文中子说:舍弃众人所争的,取用众人所弃的,不也是君子吗?像此类的言论,是理义之言。心迹之判久矣,像此类的言论,是造化之言。
庄子气豪,如吕梁之事,言之至者。《盗跖》言事之无可奈何者,虽圣人亦莫如之何。《渔父》言事之不可强者,虽圣人亦不可强。此言有为无为之理:顺理则无为,强则有为。
金属经百炼然后精纯,人亦如此。
佛氏弃君臣、父子、夫妇之道,岂是自然之理?
志于道者,统而言之。志,是潜心之谓。德,是得于己,有形故有据。德主于仁,故曰依。
庄子说:庖人虽不治庖,尸祝不越樽俎而代之。这是君子思不出其位、素位而行之义。
晋狐射姑杀阳处父,《春秋》书“晋杀其大夫阳处父”,是君主泄漏言语,君不密则失臣,所以书国杀。
人得中和之气则刚柔均,阳多则偏刚,阴多则偏柔。
作《易》者岂不知盗吗?圣人知天下万物之理而一以贯之。
以尊临卑曰临,以上观下曰观。
毋意、毋必、毋固、毋我。合而言之则一,分而言之则二;合而言之则二,分而言之则四。始于有意,成于有我。有意然后有必,必生于意;有固然后有我,我生于固。意有,心必先期;固不化,我有己也。
记问之学未足以为事业。
学在不止,所以王通说“没身而已”。
本卷的核心思想可以概括为以下几个方面:
1. 性命之理的本源追溯
邵雍从太极、奇偶、乾坤、否泰的生成序列出发,构建了一套宇宙生成论。万物并非直接源于乾坤,而是通过否泰二卦的交合而生成。这不仅是一个卦象排列问题,更揭示了阴阳交合、动静相生的根本原理。
2. 诚与藏用的修养工夫
“诚”被提到极高的地位,是“主性之具”“通神明”的关键。同时,“藏用”是圣人的核心智慧——天地生物之功可见(显仁),而造化之妙不可见(藏用)。这种显与藏的辩证,要求人既要有所作为,又要善于潜藏其用,不走极端。
3. 尽性与循自然之理
《春秋》被定位为“尽性之书”,不是因为圣人有私意褒贬,而是因事而立论,循自然之理。这与《易》的“顺性命之理”相呼应。真正的高明不是刻意安排,而是顺应事物本然的规律。
4. 权变的辩证思想
“权”被定义为“平物之轻重”,圣人行权不是背道,而是合宜。汤武革命、嫂溺援手,都是在特定条件下对常理的突破。但只有圣人在其位方可为,否则就是篡逆。这种对“权”的限制性理解,体现了儒家思想的严谨性。
5. 内重外轻的价值取向
反复强调“内重则外轻”,心的主宰性、德性优先于才能、诚久于智数。这是整个工夫论的落脚点——建立内在的根基,外在的功业才能持久。
去迷信化与理性转化
本卷中“诚可通神明”之类的表述,在现代语境下可以转化为:当人对事物规律有真诚而深入的把握时,能触类旁通、见微知著。“神明”不是外在的神秘力量,而是事物深层的运行规律。🌀
“先天学主乎诚”在现代意义上,可以理解为:任何决策和行动,若建立在真诚面对事实、不自我欺骗的基础上,才能产生长远的正面效果。这实际上是强调认知的客观性和心态的真诚性。
“藏用”与管理智慧
“显诸仁,藏诸用”与现代管理学中的“领导力艺术”有异曲同工之妙。最好的管理者让组织运行如日月照临、四时成岁一样自然,下属感受到的是成果而非控制。这对应了现代管理中“隐性领导”“服务式领导”的理念。
“权变”与当代决策
邵雍关于“权”的讨论,对当代决策有重要启示:规则与变通不是对立的。在常规情况下遵守规则(礼),在特殊情况下需要权衡利弊做出突破(权)。但突破需要具备相应的条件和责任,否则就是“篡”——即不正当的越权。
“内重外轻”与心理健康
现代心理学强调内在动机优于外在动机。本卷反复强调“内重则外轻”“得失不动心所以顺天”,与现代认知行为疗法中对内在价值感的重视高度一致。不为外在评价所裹挟,建立内在的稳定核心,是心理健康的根本。
“量力而行”与可持续发展
“事必量力,量力故能久”在现代语境下可理解为资源管理中的可持续性原则。无论是个人精力管理、企业战略,还是国家政策,超出承受能力的扩张必然导致系统崩溃。
决策方法论:假设—行动—复盘
人际关系的“直道”原则
“天地之道直而已,当以直求之。”在现代人际关系中,最省力且最稳固的方式是真诚直接。用权谋智数或许短期有效,但“持乆必败”。这可以作为职场关系和家庭关系的根本原则。
知识管理的“藏用”智慧
“人之精神贵藏而用之”——在现代信息过载的环境中,注意力是稀缺资源。不将精力消耗在无意义的展示上,将核心精力投入真正重要的事务,这是“藏用”的现代应用。
历史评价的系统思维
邵雍对五霸的评价不是简单的褒贬,而是先定功过,再论细节。这种“先立大体,再究细节”的方法,适用于现代的历史研究、企业管理评估和个人成长反思。
“无我”与客观性的悖论
邵雍认为《春秋》之所以是“尽性之书”,在于圣人“无我”。但绝对的“无我”是否是可能的?现代哲学中,任何观察都带有观察者的视角。这里的“无我”或许不应理解为消除一切主观性,而是不以私意扭曲事实,不让个人好恶遮蔽判断。这是一种认识论上的自我约束。
“诚”作为本体与工夫的统一
“天地无则至诚可息,故天地不能无,则至诚亦不息也。”这里“诚”不仅仅是人的主观状态,而是与天地存在同一层次的存在论概念。这种将主观修养与客观规律打通的思想,暗示了心物一元的哲学立场,与现代现象学中“意向性与世界不可分”的思路有深层对应。
“权”的悖论:谁有权行权?
“唯汤武则可,非汤武则篡也”——这提出了一个极为尖锐的合法性悖论。同样的行为,在圣人是“权”,在常人是“篡”。这背后的问题是:道德评判是否以行为本身为标准,还是以行为者的身份和结果为标准?这是道德哲学中至为深刻的难题。
“内重外轻”与自由意志
“心能运身,若心所不欲,身能行乎?”强调了心的主宰性。但这与现代神经科学中的发现——很多行为先于意识产生——构成了一种张力。或许可以将“心”理解为更深层的价值选择和方向设定,而非即时的行为控制。
| 概念 | 说明 |
|---|---|
| 太极 | 宇宙本原,阴阳未分的混沌状态,邵雍宇宙生成论的起点 |
| 乾坤否泰 | 乾为纯阳,坤为纯阴,否泰为阴阳交合的门户,万物由此生成 |
| 先天学 | 邵雍独创的学术体系,以先天图式为框架,强调“诚”为根本 |
| 绝四 | 孔子“毋意、毋必、毋固、毋我”,消除主观预设的方法论 |
| 权变 | 儒家对规则与变通关系的核心讨论,区别于法家的“术” |
| 显仁藏用 | 出自《系辞》,天地之功可见为“显”,造化之妙不可见为“藏” |
| 五霸 | 春秋时期秦穆公、晋文(侯)、齐桓公、楚庄王、宋襄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