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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3장 중 12장
庄子
天地虽然广大无垠,它化育万物的作用却是均平无私的🌏;万物虽然纷繁众多,其内在的条理却归于同一;百姓虽然为数众多,主领他们的,是君主。
君主以德(万物得之于道的本性)为根本,而成就于天(自然)。所以说,远古的君主治理天下,不过是无为(不妄加干预,顺应自然)罢了,只是守住天德而已。以道(宇宙的本源与规律)来观照名分,天下的君主就各安其位;以道来观照职分,君臣之义就分明了;以道来观照才能,天下的官吏就各尽其职;以道来广泛观照,万物的应对无不完备。所以贯通于天地的是德,运行于万物的是道,在上治理人事的是事,才能有所专精的是技。技归属于事,事归属于义,义归属于德,德归属于道,道归属于天。
所以说:古代畜养天下的君王,自己没有贪欲而天下自然富足,无所作为而万物自然化生,深沉静默而百姓自然安定。古《记》中说:“通达于一(道)则万事自然成就,无心而求则鬼神都钦服。”
夫子说:“道,覆盖和承载万物,浩瀚广大啊!君子不可不涤除自己的私心。顺应自然去做,称为天;顺应自然去说,称为德;爱人利物,称为仁;使不同的事物归于同一,称为大;行为不标新立异,称为宽;能容纳万物的差异,称为富。所以坚守德称为纲纪,德有所成就称为立,遵循道称为备,不因外物而挫伤心志称为完。君子明白这十个方面,就能包容万物,其心之广大,充沛流行而与万物同往。若能如此,就像把金子藏在山中,把珍珠藏在深渊;不贪求财货,不亲近富贵;不以长寿为乐,不以夭折为哀;不以显达为荣,不以穷困为耻。不将世间的利益据为己有,不以统治天下而自居显赫。显赫则必然暴露。万物本为一体,死生本无差别。”
夫子说:“道,安居时深沉静默,流动时清澈明净。金石没有道的激荡就无法发声。金石本有发声的能力,但不敲击就不会响。万物谁能测度道的深奥!那些具有王德(与道合一的至德)的人,质朴而行,以通晓事务为耻,立足于根本而智慧通达于神明,所以他的德广大。他的心神外发,是因为有外物感应。所以形体没有道就不能生长,生命没有德就不能彰显。保全形体、穷尽生命、树立德行、彰明大道,这不就是具有王德的人吗!浩荡广大啊!他忽然出现,勃然行动,而万物追随他!这就是王德之人。他视物在幽暗中,听声在无声处。幽暗之中,却能独见光明;无声之中,却能独闻和谐。所以深之又深,却能贯通万物;神之又神,却能洞察精微。所以他与万物交接,虽然至为虚空却能满足万物的需求,随时运行而能安顿万物的归宿。”
黄帝在赤水之北游览,登上昆仑山向南眺望。返回时,遗失了玄珠(比喻道)。派知(象征智慧)去找,找不到;派离朱(象征明察)去找,找不到;派喫诟(象征言辞)去找,也找不到。于是派象罔(象征无心无迹),象罔找到了。黄帝说:“奇怪啊!象罔竟然能找到它?”
尧的老师是许由,许由的老师是啮缺,啮缺的老师是王倪,王倪的老师是被衣。尧问许由:“啮缺可以配天(担当天子之位)吗?我想通过王倪去邀请他。”许由说:“危险啊,天下将要岌岌可危!啮缺的为人,聪明睿智,反应敏捷,天资过人,却又要以人事去承受天命。他明于禁止过失,却不知过失从何而生。让他配天吗?他将依凭人的智巧而抛弃自然。他将以自身为根本而区别于万物,将尊崇智巧而如火急奔,将为琐事所驱使,将为外物所束缚,将四处张望而应付万物,将迎合各种需要,将与万物变化而从未有恒常的本性。他哪里足以配天呢!虽然如此,他也算有宗族有传承,可以做众人的首领,但不足以做统领首领的人。治理,是祸乱的根源,是臣子的祸患,也是君主的祸害。”
尧巡视华地,华地的守边人说:“啊,圣人!请允许我为圣人祝福,愿圣人长寿。”尧说:“不必了。”守边人说:“愿圣人富有。”尧说:“不必了。”守边人说:“愿圣人多生儿子。”尧说:“不必了。”守边人说:“长寿、富有、多子,是人人都想要的。您偏偏不想要,为什么呢?”尧说:“儿子多了就多忧惧,财富多了就多麻烦,寿命长了就多屈辱。这三样都不是修养德性的助力,所以推辞。”
守边人说:“起初我以为您是圣人呢,现在看来只是君子罢了。天生万民,必然赋予他们各自的职分。儿子多了就让他们各自尽职,有什么可忧惧的?财富多了就分给众人,有什么麻烦的?真正的圣人,像鹌鹑一样随处安居,像雏鸟一样随遇而食,像飞鸟一样不留痕迹。天下有道,就与万物一起昌盛;天下无道,就修养德性而隐居闲处。千年之后厌倦了人世,就离世而去,登上仙途,乘着白云,到达天帝的居所。三种祸患不会到来,身体常无灾殃,又有什么屈辱可言呢?”守边人说完就离开了。尧跟上去说:“请问……”守边人说:“回去吧!”
尧治理天下时,伯成子高被立为诸侯。尧传位给舜,舜传位给禹,伯成子高辞去诸侯之位而去耕作。禹前去看他,他正在田野里耕作。禹快步走到下风处,站着问道:“从前尧治理天下时,您被立为诸侯。尧传给舜,舜传给我,而您却辞去诸侯之位去耕作。请问这是什么缘故?”
子高说:“从前尧治理天下,不用奖赏而百姓自然勤勉,不用刑罚而百姓自然敬畏。如今您用奖赏和刑罚,而百姓却不知仁爱,德行从此衰败,刑罚从此建立,后世的祸乱将从这里开始!您为什么还不走呢?不要耽误我的农事!”他专心耕作,头也不回。
泰初(宇宙的原始状态)有“无”,没有“有”,也没有名称。一(道)从无中升起,有了“一”但还没有形体。万物获得它而生长,称为德;还没有形体时已经有了区分,而且浑然无间,称为命;流动中停留而产生物,物生成而具有条理,称为形;形体保藏精神,各有各的法则,称为性。修养性而返归于德,德达到了极致就与泰初相同。与泰初相同就虚,虚就能容纳广大。与万物合鸣。合鸣就与天地合一。这种合一浑然一体,若愚若昏,这就是玄德(深远的德),与大顺相同。
夫子问老聃说:“有人研究道,却好像彼此互相仿效,把不可的说成可,把不对的说成对。辩者有这样的说法:‘分离坚与白,就像悬挂在天空那样分明。’像这样的人可以称为圣人吗?”
老聃说:“这只是小吏和工匠的技艺,劳累身体、忧苦心神罢了。善于捕猎的狗受到拘系,敏捷的猿猴被从山林中捉来。孔丘,我告诉你,你所不能听闻的和你所不能言说的:凡是有头有脚、却没有心没有耳的人很多;有形体的与无形无状的道同时都存在的,几乎没有。万物的动静、生死、兴废,都不是它自己能够做主的。治理在于人。忘掉外物,忘掉天,这就叫忘己(忘掉自我的执著)。忘己的人,才真正进入了天。”
将闾葂见季彻说:“鲁君对我说:‘请指教。’我推辞不掉。已经对他说了,不知对不对。请让我向您说说。我对鲁君说:‘必须恭敬节俭,选拔公正忠诚的人而不偏私,百姓谁敢不和睦!’”
季彻听了,轻轻地笑着说:“像先生这番话,对于帝王之德来说,就像螳螂愤怒地举起手臂去阻挡车轮,必然不能胜任!而且这样做了,自己会处于危险的境地,就像高台上堆满东西,想往那里投奔的人会很多。”
将闾葂惊讶地说:“我对先生的话感到茫然了!虽然如此,希望先生说说大概的意思。”季彻说:“大圣治理天下,摇动人的心志,使它自然形成教化、改变风俗,消除每个人的贼害之心,而发扬各自独立的志向。就像本性自然为之,而百姓不知其所以然。如果这样,何必推崇尧舜的教民方法而甘居其下呢?想要与德合一,心自然安定了!”
子贡向南游历楚国,返回晋国时,经过汉水的南岸,看见一位老人在整理菜畦,挖了一条隧道进入井中,抱着陶罐出来浇水,费了很多力气却功效很少。子贡说:“有一种机械,一天可以浇灌一百畦,用力很少而功效很多,先生不想用吗?”老人抬头看看他说:“怎么弄?”子贡说:“用木头做成机关,后面重前面轻,提水像抽水一样,快得像沸水翻涌,它的名字叫桔槔。”老人变了脸色,笑着说:“我听我的老师说,有机械的人必定有机巧之事,有机巧之事必定有机心(机巧算计之心)。机心藏在胸中,则纯粹洁白的心性就不完备。纯粹洁白的心性不完备,则精神就不安定。精神不安定的人,道是不会承载他的。我不是不知道,而是羞于去做。”
子贡羞愧地低下头,无言以对。过了一会儿,老人问:“你是干什么的?”子贡说:“我是孔丘的弟子。”老人说:“你不就是那个博学多闻、想效法圣人,夸夸其谈想盖过众人,独自弹琴哀歌,在天下人面前卖弄名声的人吗?你正应该忘掉你的神气,毁弃你的形体,差不多还可以接近道!你自己都不能治理好自己,哪有闲暇治理天下呢!你走吧,不要耽误我的事。”
子贡脸色大变,心神不宁,走了三十里才恢复过来。他的弟子问:“刚才那个人是干什么的?先生为什么见了他脸色都变了,整天都回不过神来?”子贡说:“起初我以为天下只有一个人(指孔子),不知道还有这样的人。我听老师说:做事要合理,用力要少,功效要多,这才是圣人之道。如今才知道不是这样。执守道的人德行完备,德行完备的人形体健全,形体健全的人精神充实。精神充实,这才是圣人之道。这样的人寄托生命与百姓同行,却不知道自己要往哪里去,浑然淳朴完备!功利机巧必定不能侵入他的心。像这样的人,不是他志向所向就不会去,不是他心愿所往就不会做。即使天下人都赞誉他,合乎他的心意,他也傲然不顾;天下人都非议他,不合他的心意,他也漠然不受。天下的非议和赞誉对他没有损益,这就是全德之人(德行完整无缺的人)啊!而我只能算是风波之民(心神容易被外物动摇的人)。”
子贡回到鲁国,把这件事告诉孔子。孔子说:“那是修习浑沌氏之术(主内而不主外的修身之道)的人。他只知道其一,不知道其二;只治理内心,而不治理外物。那种光明纯净、返璞归真、体悟本性、怀抱精神、在世俗之间悠游的人,你当然会感到惊讶!而且浑沌氏之术,我和你又怎么能识别得了呢!”
谆芒向东游历到大海边,正好在东海之滨遇见了苑风。苑风问:“你要去哪里?”谆芒说:“要去大海。”苑风问:“去做什么?”谆芒说:“大海这个东西,水注入也不会满,舀取也不会尽。我要去那里游玩。”苑风说:“先生不关心百姓吗?希望听听什么是圣治(圣人的治理)。”谆芒说:“圣治吗?官员施政合乎时宜,选拔人才不遗漏有才能的人,看清事物的实情然后采取行动,所有的言行都出于自然,天下自然被感化。挥手示意、以目示意,四方百姓无不前来归附,这就是圣治。”
苑风说:“想听听什么是德人(有德之人)。”谆芒说:“德人,安居时没有思虑,行动时没有谋划,心中不藏是非美恶。四海之内共享利益就感到喜悦,共同富足就感到安宁。他惆怅的样子像婴儿失去了母亲,恍惚的样子像走路迷失了方向。财物充裕却不知从哪里来,饮食充足却不知从哪里出,这就是德人的风貌。”
苑风说:“想听听什么是神人(与道合一的人)。”谆芒说:“至高的神人驾驭光明,与形体一同消亡,这叫做照彻空旷。穷尽本性、尽情于命,天地与我同乐而万事消解,万物回复本真,这叫做混同于溟漠。”
门无鬼和赤张满稽在观看武王的军队。赤张满稽说:“比不上有虞氏(舜)啊!所以才遭遇这样的祸患。”门无鬼说:“天下太平是有虞氏治理的结果呢?还是天下乱了以后他才去治理的呢?”赤张满稽说:“天下太平是人们的愿望,何必再指望有虞氏呢!有虞氏治理天下,就像人生了疮才去医治,秃了头才去戴假发,病了才去求医。孝子拿着药去医治慈父的病,面容憔悴,圣人以此为耻。在至德之世(道德最完备的时代),不崇尚贤人,不使用能人,君主像高高的树枝无所作为,百姓像野鹿一样自由自在。百姓端正却不知这是义,相爱却不知这是仁,诚实却不知这是忠,守信却不知这是信,自发行善而不认为是恩赐。所以行动没有痕迹,事迹没有流传。”
효자가 그의 부모에게 아첨하지 않고, 충신이 그의 군주에게 알랑거리지 않음이 곧 신하의 지극한 덕이다. 부모가 말하면 모두 옳다고 여기고 행하면 모두 좋다고 여기니, 세상 사람들은 그를 불초한 자식이라고 부른다. 군주가 말하면 모두 옳다고 여기고 행하면 모두 좋다고 여기니, 세상 사람들은 그를 불초한 신하라고 부른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필연적인 일인 줄 알지 못하는가? 세상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따라 옳다고 여기고, 좋다고 여기는 것을 따라 좋다고 여기면서, 이를 아첨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찌 세속의 사람들이 부모보다 더 가깝고 군주보다 더 존경할 만한가? 어떤 사람이 면전에서 자신을 아첨하는 자라고 말하면 곧 노여워하고, 자신을 알랑거리는 자라고 말하면 곧 안색이 변한다. 그러나 평생을 남에게 아첨하고 알랑거리며, 교묘한 말과 허황된 언사로 사람들을 모아들이면서도 끝내 자신의 행위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함을 알지 못하고, 화려한 옷차림과 꾸민 얼굴빛으로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 사면서도 자신이 아첨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지 않으며, 세속의 사람들과 어울려 무리와 옳고 그름을 함께하면서도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지 않으니, 어리석기가 극에 달했다. 자신이 어리석은 줄 아는 자는 아직 가장 어리석은 자가 아니요, 자신이 미혹된 줄 아는 자는 아직 가장 미혹된 자가 아니다. 가장 미혹된 자는 평생토록 깨닫지 못하고, 가장 어리석은 자는 평생토록 밝아지지 못한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는데 그중 한 사람이 미혹되면, 가려는 목적지에 여전히 도달할 수 있으니,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미혹되면, 애쓰고 수고해도 도달하지 못하니, 미혹된 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온 천하 사람들이 다 미혹되었으니, 내 비록 방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아름다운 음악과 큰 소리는 시골 마을 백성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니, 《석양》《황부》와 같은 속된 노래를 들으면 그들은 활짝 웃는다. 그러므로 고원한 말은 뭇사람의 마음속에 머물지 못하고, 지극한 명언은 전파되지 못하니, 세속의 말이 세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질항아리 소리로 방향을 미혹시키면, 영원히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지금 온 천하 사람들이 다 미혹되었으니, 내 비록 방향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도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억지로 감행하는 것, 이것 또한 한 겹의 미혹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내려놓고 추궁하지 않는 것이 낫다. 추궁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대와 함께 근심하겠는가! 추한 사람이 한밤중에 아이를 낳고는 급히 등을 켜고 살펴보니, 자신처럼 추울까 두려워해서이다.
백 년 된 나무를 쪼개어 제기(祭器)를 만들고 푸르고 노란 무늬를 칠한 뒤, 남은 나무 조각은 도랑에 버려진다. 제기와 도랑 속의 나무 조각을 비교하면 아름답고 추한 차이는 실로 있지만, 본성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도척과 증삼·사추는 행실이 의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본성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본성을 잃는 데는 다섯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오색이 눈을 어지럽혀 눈이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둘째, 오성이 귀를 어지럽혀 귀가 똑바로 듣지 못하게 한다. 셋째, 오취가 코를 쏘아 콧구멍을 막고 이마를 상하게 한다. 넷째, 오미가 입을 탁하게 하여 혀가 마비되어 감각을 잃게 한다. 다섯째, 취하고 버리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혀 본성이 날아 흩어져 안정되지 못하게 한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생명의 재앙이다. 그런데 양주와 묵적은 스스로 얻은 바가 있다고 여기지만, 이것은 내가 말하는 얻음이 아니다. 얻은 것이 있으면서도 곤궁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얻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새장 속의 꿩도 얻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음속이 소리와 빛, 취하고 버림으로 가득 차면 쌓인 섶과 울타리처럼 되고, 겉모습이 예관 예복과 홀과 띠로 얽매이면 새끼줄에 겹겹이 묶인 것과 같다. 마음속은 섶과 울타리로 가득 차 있고 겉은 겹겹의 얽매임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얻었다고 여긴다면, 죄인이 두 손을 뒤로 묶인 것과 호랑이와 표범이 우리 속에 갇힌 것도 얻음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